[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사실 저는 잘 쓰지 않은 단어인데, 친구가 모령성체(冒領聖體)에 대해서 물어왔습니다. 모령성체는 영성체, 즉 성체를 내 몸에 모시는 행위를 모독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교회법(915조)에 따르면, 형벌의 부과나 선언 후의 파문 처벌자나 금지 처벌자들과 그 밖의 분명한 중죄 중에 완강히 머물러 있는 자들에 대해서는 영성체를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중죄를 짓거나 이단 행위 등을 통해 교회 공동체로부터 파문당한 이 등은 성체를 받아 모실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이 고해성사(고백성사)를 통해 하느님과 화해하지 않은 채 영성체를 하게 되면 모령성체가 됩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모령성체에 ‘가까운’ 경우는 아마도 주일미사를 여러 번 거르고도 고해성사를 받지 않은 채 영성체를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가 가르쳐 드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고해소 안에서 신자 분들로부터 종종 듣게 되는 ‘죄목’ 리스트 중에 하나입니다.

아무튼, 고백하러 오셨으니 환영합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자각하고 계시는 분들이고, 영성체를 하고 싶었으나 고백을 할 기회를 못 찾다가 어렵게 찾아오신 분들입니다. 이분들이 중죄를 범했다고 할 수 없기에, “모령성체에 가까운”이라고 해 본 것입니다. 이런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사제들 중에는 일단 성체를 영하도록 권유하고 미사에 이어서 고백을 듣는 분들이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신자 분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지혜로운 태도로 보입니다.

ⓒ한상봉 기자

모령성체와는 달리, 일상 안에서 성체를 좀 더 정성껏 모시는 태도에 대해서 언급해 볼 수 있습니다. 영성체를 준비하는 대표적인 태도가 공심재(空心齋, Eucharistic fast) 같은 것이라 할 것입니다. 한자 표현이 멋집니다. 마음을 비우고(욕심이나 걱정거리를 덜어내는 걸 의미하겠죠?) 음식을 삼가며 (마음과) 몸을 정갈히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가톨릭 대사전을 보니, 공심재는 성체성사에 대한 경외심으로 영성체를 하기 전, 일정 시간 동안 음식과 음료를 절제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예전에는 미사가 있는 날 자정부터 물도 마시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수정되어 지금은 영성체 전 한 시간동안 알코올음료를 포함하여 딱딱한 음식이나 음료를 절제하도록 돼 있습니다.

이때 한 시간이란 미사 시작 전 한 시간이 아니라 실제로 영성체를 하러 나가기 전 한 시간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미사 시작 전 한 시간이라 알고 계셨던 분들은 억울하신가요? 그렇게 보실 게 아니라 더 정성껏 마음을 준비했다고 보시면 기분이 좋아질 겁니다.)

예외적으로 공심재에서 자유로운 분들은, 환자나 연로하신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상태에 따라서 공심재를 지키고 말고를 자유롭게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아무튼 정리하며 말씀드리면, 공심재는 내 안을 비워, 오로지 예수님만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두려는 정성의 표현이며, 성체성사의 중요성에 대해 되새겨 보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런데, 영성체를 하러 나가면서 무슨 생각하세요? 간절한 개인의 바람을 가지고 나가시는 분도 계실 듯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며 영성체를 하시는 분도 계실 것이며, 성체를 모심으로써 영혼의 양식을 얻고 살아나갈 힘을 얻고자 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뭐, 어떤 분은 미사 전례의 한 부분으로서 습관처럼 성체를 모시는 분도 계실 것이라 어림합니다. 지금까지는 각자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영성체를 해오셨다고 해도, 앞으로는 성체가 우리 구원의 보증이 된다는 걸 자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예수님께서 나에게 오시어 일치하신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언뜻 아주 바람직한 상상이지만, 방향이 잘못된 것입니다. 제대로 된 방향은 내가 예수님에게 일치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내 모습이 되는 것은 내가 변화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영성체를 통해 내가 예수님이 된다는 것은 결국 내가 그분의 삶 전체로 변화해 가는 것을 설명합니다. 즉, 내가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 그렇기에 성체가 구원의 보증이 된다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그분의 부활에 함께하게 되며, 영원한 삶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니 영성체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성체 앞으로 나오실 때는 내가 그분에게 일치하기 위해 발걸음을 떼고 있음을 느끼시고, 잠시 후에 그분이 되리라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행위들이 쌓이면서 우리 각자는 조금씩 조금씩 그리스도가 되어가는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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